3/20/07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저는 세상일에 온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평생 동안 천주교 신자로 살았지만,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아주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카톨릭 신자의 의무는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일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보며,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바치면 되는 걸로 믿고 살아왔으니까요.

이런 저와 저희 가족의 영혼을 불쌍히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구원계획을 세우셨나 봅니다. 2006년 여름, 제가 미네소타 대학의 조교수로 부임하면서, 우리가족은 미네소타로 이사왔습니다. 이사온 지 만 두 달만에, 남편이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기침이 심한 것 외에는 큰 증상이 없어서 암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암은 이미 양쪽 폐, 목, 척추뼈, 그리고 간으로 퍼져,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앞으로 4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하였고, 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9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순간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남편과 저는 심한 충격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채 몇 일을 힘들게 지냈습니다. 원망과 분노 그리고 체념 등 부정적인 마음으로 한동안 힘들어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축복은 같이 온다는 말씀과 같이, 저희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르심이고 또 주님만이 남편을 살려낼 수 있고, 우리 가족을 구원할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서서히 걷혀지며, 온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조금씩 조금씩 기도하는 양을 늘려 나갔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으며, 아이들의 악기 반주에 맞추어 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관한 서적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온 몸에서 저절로 힘이 났고, 얼굴에 윤기가 돌기 시작하니, 주위분들이 놀라와 했습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제가 참 딱하고 불쌍한 처지에 놓인 것인데, 오히려 기쁨에 차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니까요. 성당의 형제 자매님들을 통해 보내주신 주님의 사랑은 저의 가족에게 사랑의 나눔이 무엇인지 진정 일깨워 주었고, 그들의 기도는 남편의 암세포를 죽이는 약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오하이오 성지로의 부르심은 주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주신 또 하나의 커다란 축복이였습니다. 두 달간의 키모 치료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남편이었지만, 이 부르심에 주저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주님께서 지켜주실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아이들 세 명과 함께 오하이오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곳은 정말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현존하시는 평화와 성령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남편은 하나되신 성심의 예수님과 성모님의 동상앞에서 아주 편안하고 깊은 낮잠을 잤습니다. 12월 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매섭게 춥지 않았고, 마치 성모님의 배려로 그 날들을 준비하신것 처럼 아름다운 날씨였습니다. 그 따스한 햇살아래 남편은 어린 아이처럼 성모님과 주님의 품속에서 잠을 자며 사랑과 힘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과 성모님동상의 손을 어루 만지며 그 분들의 사랑의 치유를 청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그리고 침묵의 묵상을 하며 하루 종일 그 평화스로운 곳에 머물며 눈물어린 회개와 기도로 거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하이오 성지순례는 또한 저희 가족에게 미사의 참 의미를 느끼게 한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피정중의 대니엘 신부님의 영혼과 마음을 다하여 모시는 미사는 너무나 감동스러웠습니다. 미사의 거룩함을 처음으로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미사중에 저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성체를 높이 들어 올리셨을 때,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는 분이 일어선 자세로 성체안에 나타나셨고, 그 바로 뒤에 똑같은 모습의 한분이, 또 똑같은 모습의 한분이 연달아 나타나시며 세분이 나란히 성체안에 계셨습니다.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여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었지만 한동안 머물러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약한 믿음을 아시고 “보고 믿으라”고 저에게 이런 삼위일체의 신비를 보여 주신것 같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성령님이 하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악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길 때마다 주님의 그 사랑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을 바위 같이 지켜주고,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는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미사는 이제 저에게 더이상 지루한 일상형식이 아닙니다. 미사중에 아무런 느낌없이 어서 미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저 였는데, 지금은 예수님과 성모님을 마음속 깊이 만나는 시간으로, 그리고 눈물로 저를 정화하고 저의 영혼을 치유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축복으로, 그리고 많은 형제 자매님들의 마음 어린 기도로 남편의 폐암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난 화요일 사진결과로는 림프 노드 근처에 있는 조그만 사이트외에는 암이 전 사이트에서 활동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림프 노드 근처의 암은 방사선 치료를 3주 정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활동을 멈춘 암은 멈춘채로 영원히 지속될 확률이 5%이고, 나머지 95%는 언제 재발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남편이 5%안에 들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주님의 뜻에 순명할 것입니다. 주님은 저희에게 가장 좋은 것 을 주시는 분이니까요. 세월이 지난 뒤 돌아보면 주님이 주신 그것이 그때로서는 가장 최선의 것이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의 진단을 알고나서 많은 충격으로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 전원의 미지근한 신앙이 성령의 불로 뜨겁게 변화되었고, 오하이오의 거룩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기도방 모임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성모님께 힘을 실어 드리기 위해 낙태종식을 위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낙태는 한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아무런 마음의 죄책감없이 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아침미사와 성체조배로 매일 매일 주님의 힘을 받지 않으면 하루를 살아내지 못할 만큼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저는 삶과 죽음이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 대로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시간에 이 세상을 떠나갈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저는 때로 두렵습니다. 제가 죽은 후, 주님을 대면할 그 시간에 주님께 보여드릴 사랑의 공덕이 많지 않기에 두렵고 또 죄스런 마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남편의 고통을 통해서 저와 저희 가족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사랑 나눔의 참 의미와 참 실천을 알게 해주셨으니까요. 저희 가족은 하느님께 저희의 최고를 드리고자 노력하며, 희망안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느님의 사랑의 치유가 남편을 비롯한 저희 가족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치유의 은총 받음은 주님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글을 통해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부족하지만 적어 보았습니다. 저희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글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신앙체험의 공유는  우리의 미약한 믿음을 키워주는 좋은 자양분이 되니까요.

모든 분들께 주님의 따뜻한 은총과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네소타에서 이 바오로 그리고 윤 마리아 부부가